1999년12월17일 (금) 대한민국의 생일

어제 저녁부터 쌍둥이 생일 잔치 때문에 누나들이 분주했다. 색색깔의 크고 작은 풍선,
'HAPPYBIRTH DAY KOREA' '알라뷰 한국' 벽, 커튼이 성탄 장식과 어우러져 근사하다. 풍
선 부는 누나 옆에서 한이와 국이는 풍선 장난으로 깔깔 거렸다. 다운이가 주둥이를 묶지 않은
풍선을 놓자 푸드득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풍선을 보고 한이가 놀라 도망가더니 "눈나 풍선
방구낀다(방귀 꼈다.)."
아침, 일찍 아내는 미역국을 끓였다. 늦잠 자는 한이와 국이에게 다가 간 누나들이 살짝 안고
뽀뽀를 해 주었다. 잠에서 설 깬 한국이는 떠지지 않는 눈으로 엄마를 찾고 부르면서 엄마에게
로 엉거주춤 달려 갔다. 생일상 준비하는 엄마는 더 바쁘게 되었다. 국이는 자꾸만 엄마 치마
폭으로 쌓이려고 용을 쓰고 한이는 뒤에서 눈물 섞인 목소리로 엄마를 연호한다. "엄마 안아 줘."
점잖아야 할 생일상도 잠시, 식탁은 곧 전쟁터가 되었다. 엎질러지는 국물, 한이의 즉석 요리인
주물럭 미역, 국이의 즉석 요리인 미역 김치 잡탕, 누나들의 비명(?), 바빠진 엄마 손.
저녁에는 형광등을 끄고 제법 분위기를 잡았다. 그리고 촛불을 켰다.
"아름다운아 대한민국이를 위해서 축하의 메시지 한 마디씩 해봐."
"한이 국이 생일 축하한다. 잘 커. 너희들 빨리 커. 앞으로는 더 귀여워 해 줄게. 그리고 내가
큰 누나야. 내방 저지르지 마. 알았어?" 축하 메시지가 경고성 메시지로 되었다. 한국이는 무슨
소리인 줄도 모르고 좋다고 그저 웃는다. 이어서 다운이 차례.
"한국아 생일 축하해. 어 어이, 그러지 마. 안돼. 안돼."
순간적으로 국이가 케이크에 손을 댔다. 케이크를 만지겠노라고 촛불을 끄겠노라고 갑자기 두
녀석이 사나와졌다(?) 잔잔한 분위기는 일순간에 깨졌다. 아내는 한이를, 아름이가 국이를 안자
아빠의 싸인, 다운이의 피아노 반주, 이어서 부르는 우리들의 주제곡, '아주 먼 옛날 하늘에서
는 한국이 향한 계획 있었죠.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며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네 이 세상 그 무엇
보다 귀하게 나의 손으로 창조하였노라 내가 너를 인하여 기뻐하노라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연 이은 찬양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박수. 짝짝짝.
"한국아 후 해." 한이와 국이는 좋아라 하면서 '후훅'하고 불었다. 그런데 방향이 잘 맞지 않아
서 단번에 꺼지지 않았다. 다시 불더니 촛불이 꺼졌다. 이번에는 사진 촬영을 위해서 초에 불
을 붙였다. 불 붙이기가 무섭게 한이가 후욱하고 불었다. 또 불을 붙였다. 서로 빨리 끄려고 하
지만 사진사 아빠를 위해서 누나들이 두 녀석을 꽉 잡았다. 그러니 이 녀석들은 고함을 치고
발버둥을 치고 난리가 났다. 카메라 후레쉬가 터진 후 촛불을 끄고 나서야 좋다고 해해 웃는
다. 역시 케이크는 누나들 차지였고 주인공들은 케이크의 크림으로 난장판을 만들었다.
파티는 끝났다. 고요함이 흐른다. 송도 해변의 야경, 풍선의 미소, 축하 장식에 숨은 아름다운
이의 숨결, 교회 종탑 성탄별의 아이 웃음, 아름다운이의 책 뒤적이는 소리, 대한민국이의 우유
병 빠는 소리, 쌍둥이 속옷 갈아 입히는 아내의 몸짓 소리. 거실에 앉은 가장에게 밀려오는 사
명감

, 행복, 감사. 대한민국의 거국적인(?) 생일 파티 - 대한민국의 개국일(?) 잔치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