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3월15일 (수) "안 울었다."

저녁, 퇴근하는 나를 한이 국이가 반겼다. 내게 안기자 말자 한이가 아침 상황을 보고했다.
"아빠, 국이 차 타고 울었다. 근데(그런데) 한이 안 울었다."
"그래? 한이 착하다. 국이는 엄마가 좋아서 울었어?"
"응 엄마 좋다. 아빠 좋다. 누나 좋다. 신샘(선생님) 좋다."
유치원 입학해서 며칠 동안 등교하면서 차를 탈 때마다 엄마와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 한이와
국이에게 울지 말라고 아침 출근하면서 타일렀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아름이가 한국이에게 보
내는 편지라면서 내게 주었다.

사랑하는 귀여운 동생들 대한 민국이에게
한국아
유치원 입학을 축하한다.
누나가 3월 이후 많이 놀아 주지 못하고 얼굴 보기도 힘이 들어서 미안해.
어머니께로부터 너희들의 유치원 생활을 들어 보니 너희들은 유치원에서도
꽤나 장난 많이 치는가 보더라.
음 대한이는 누나를 닮아서 그런지 유치원 갈 때 울지도 않고 유치원에서
도 잘 논다며? 그런데 민국이는 동생이니까 유치원에서 민국이 잘 돌봐 주
렴. 너네는 쌍둥이니까 항상 붙어 다니고 잘 협력해라.
그리고 민국이.
너는 장난도 제일 심하고 울기도 제일 많이 운다면서? 원장 선생님께서 너
희들을 구별하실 때 항상 우는 아이가 국이라고 하셨다던데 유치원에서 정
말 많이 우는 모양이구나 집에서도 항상 투정 부리고 많이 울더니 유치원
에서도 선생님만 붙어 다니면서 투정 부리고 온다던데 이제부터는 좀 조용
히 놀려무나.
요즘 너희와 함께 놀 때 너희가 참 많이 컸다는 걸 많이 느끼게 된다. 너희
들이 말도 조금씩 하고 학교 다녀오는 누나들에게 대문도 열어 주고 유치
원에 가는 것들이 정말 신기하고 귀엽단다.
누나가 한국이에게 이런 아이가 되어 달라고 부탁하고 싶구나. 개구쟁이
짓을 많이 하지만 심한 장난은 많이 치지 않는 아이. 부모님 말씀, 선생님
말씀 잘 듣는 아이, 친구들과 싸우지 않고 친하게 잘 지내는 아이. 투정부
리지 않고 울지 않는 아이.... 누나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가?
그런데 누나의 진심은 말야 한국이가 그런 아이가 안 되어도 괜찮아. 건강
하고 믿음 좋은 아이로 자라주면 정말 고맙겠다.
누나가 좋은 이야기 하나 해 줄까? 누나의 맘이 담긴 이야기야.
마술사로부터 신기한 지우개를 받은 사람이 있었어 그는 지우개를 가지고
신문을 지워 보았단다. 세계의 높은 사람 얼굴, 그리고 그 사람의 말을 지
우니 신기하게도 다 지워졌어. 그는 신이 났단다. 그는 그림책도 사진첩도
시도 소설도 모두 지워 봤어 모두가 지워지는 거야. 정말 신기했어.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사전을 지우기로 했다지 뭐지. 정말 지우개가 지나는 곳 마
다 모든 말들이 다 지워졌어. 그런데 지우개로 지워지지 않는 것이 없는데
아무리 문질러도 문질러도 한 단어만은 지워지지 않았어. 땀을 흘리며 문
지르고 문지르다가 마침내 지우개가 다 닳아지고 말았어 그 지우개가 끝내
지우지 못한 단어가 뭔지 아니? 바로 '사랑'이야.
이 이야기처럼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아름답고 소중해서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 말이란다.
누나는 너희들을 무척 사랑해. 항상 믿음 안에서 크는 동생이 되었음 좋겠
어 몸 건강하게 빠이 빠이

    = 너희들을 사랑하는 아름이 누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