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월 8일 (목) 설경 속에서 한.국이는 나의 품으로!!!
이른 새벽에 잠이 깼다. 좀 더 눈을 붙여야 먼길에 지장이 없을 텐데 걱정을 하면서 연신 손목시계의 라이트스위치를 누르면서 시간을 재촉했다. 잠과 설레임의 관계는 도대체 무슨 관계일까? 지금 시각 04시 37분.
잠깐 눈을 더 붙였는데 밖이 환하다. 다른 사람이 깰까봐 베란다 문을 살짝 열었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은백색의 세상이다. 그런데 자세히 볼 수 없다.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다. 좀 더 날이 밝기를 기다려야 한다. 지루하다. 얼마가 지났을까? 다시 일어나 베란다 문을 열었다. 밤새 함박눈이 내린 듯 하다. 좋다는 생각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눈 귀한 부산에 살다보니 얼마나 반가운 눈인데 걱정이 앞서다니. 한.국이 때문이다.
아파트20층에서 보는 눈 풍경. 기가 막힌다. 얼마 만에 보는 설경인가? 자동차가 거북 운행을 하고 지하차고에서 올라오는 자동차는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뒷걸음이다. 눈이 많이 왔나 보다. TV를 틀었다. 날씨 때문이다. 첫 뉴스가 중부지방의 대설 소식이었다. 들으면서도 걱정이다. 그런데 서울은 별로 오지 않았단다. 다행이다. 그러나 북악산 길은 통제라네. 아뿔싸. 어쩌나.
눈 걱정과 설경의 아름다움과 한 국이를 만나는 설레임으로 아침을 드는 둥 마는 둥 했다. 일찍부터 정성을 다한 제수씨에게는 미안했다. 수저를 놓자 말자 성가정에 전화를 했다. 북악산길 차량통제라는데 어떡하느냐고 했더니 북악산길 말고 우회길이 있단다. 다음 말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우회길이 있다니 일단 출발하고 보자는 맘에 전화를 끊었다.
동생이 미리 축하해 주면서 난초 화분도 선물로 주었다. 고맙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눈이 20Cm는 족히 내렸는데도 계속 눈이 내렸다.
눈 속에서 동생네 식구와 사진을 찍고는 인사를 나누고 차에 올랐다. 다행히도 날씨가 눅어서 빙판은 아니었다. 녹은 눈길이 질퍽하고 미끄러웠으나 고속도로에 접어드니 운전하기에는 지장이 없었다. 정말 좋은 날이다. 푸근한 날씨의 설경. 멋진 드라이브를 하며 서울에 들어갔다. 촌사람이 서울에서 운전을 하자니 어설프기 짝이 없었지만 제대로 잘 갔다. 한성대 입구쯤 왔을 때 꽃집이 있길래 들어가서 동생이 선물로 준 화분에 분홍리본을 달았다.
"이곳에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감사합니다. 한 국"
북악산 길에 접어들었다. 걱정했던 눈길도 운전하기에는 지장이 없었다. 눈온
북악산이 아름답다. 아내는 한.국이가 우리에게 너무 좋은 선물을 한다면서 눈으로
치장한 나무를 보며 감탄을 연발했다. 부산 생활만 40년이었으니 이 아름다운 설경을
언제 봤으랴.
눈 사이의 붉은 집 성가정에 들어섰다. 가슴이 뛴다. 옷가지를 점검하고 난을 내리고 기념사진을 한 컷했다. 모두가 기억하고 싶은 장면이었고 한.국이가 훗날 궁금해할까 해서 담아 두고 싶은 순간들이었다.
현관을 들어서니 직원들이 반겼다. 미소를 띄며 반기는 수녀님들과 직원들이 천사 같았다. 한.국이가 갈아입을 옷을 전해 주고는 기다렸다. 한.국이가 며칠 전부터 감기가 들었다며 직원 한분이 약이랑 건강관리 자료들을 가지고 와서 아내에게 설명하길래 지루해서 사무실로 가서 입양에 관한 자료를 요청했다. 총무 수녀님이 친절하게 몇 가지를 챙겨 주셨다. 현관에 다시 나왔으나 한.국이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친지들에게 전화를 하면서 시간을 메워 나갔다.
드디어 새 옷 입은 한.국이가 내 품에 안겼다.
"아이고 쌍둥이 대한.민국. 우리 잘 지내자."
순간 마노아의 기도가 생각났다.
"하나님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오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오리이까"
다운이와 번갈아 가며 한참을 안아 주었으나 아내가 나오지를 않았다.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이야기하는 동안 다운이는 바깥 처마 밑에서 한.국이와 설경을 배경으로 하고 새로운 만남을 기념하며 한 장면씩 셔터를 누른다.
모든 일들을 끝내고 차에 탔다. 흔들지 못하는 한.국이의 손을 잡고 흔들어 주며 인사를 하는데 총무수녀님이 한.국이와 꼭 인사를 해야하는 아주머니가 계시다면서 기다리라고 했다. 잠시 후 나오신 아주머니는 한.국이를 번갈아 가면서 안아 주었다. 한.국이에게 특별히 정을 쏟으신 분이란다. 이놈 한.국이는 그것을 알란가 모를런지.
현관 앞에 서 계시는 직원들이 고맙다. 천천히 출발할까? 다시 내려 인사를 할까?
망설이다가 떠날 때는 말없이 라고 했던가. 그냥 출발했다. 너무 박정하게 떠나 온
것 같아서 미안한 맘이지만 어쩌겠나. 그 분들의 마음에는 그게 더 낫지 않겠는가?
지금 시각이 12시 15분.
성가정 문을 나섰다. 작은 차 엑셀 운전자이지만 PILOT가 된 기분이다. 700M쯤 오다가 성북구회관 입구에서 정차했다. 한.국이가 이렇게 선사한 북악산 길 눈구경을 언제 또 할까 하는 마음에 U턴하여 마음껏 눈구경을 즐기고 싶었다.
서울 한복판에 이렇게 호젓하고 깊은 산이 있다니 ‘대한민국은 좋은 나라여.’ 그런데 나의 쌍둥이 아들 대한.민국이는 기분을 맞추어 주지 않는다. 벌써 징징거린다. 잠시 멈추어 섰더니 경비병이 정차하지 말고 빨리 출발하란다.
부산으로 향하자.
청와대 옆길, 세종문화회관, 서울역, 남산, 한남대교를 지나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도로 사정도 좋고 주변의 설경은 아름답다. 계속 눈은 조금씩 내리고 있다. 시장기가
돈다. 첫 휴게소에서 점심이나 먹고 가자.
기흥휴게소에서 멈췄다. 먹을 만한 것이 있나 살펴 본 후 아내와 내가 한 명씩 안고는 눈보라치는 주차장을 지나 식당으로 갔다. 음식을 담아 와서 식사 기도를 했다. 감격적이다. 한.국이와 첫 식사 기도. 처음 식사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식탁에 복을 주시고 우리들의 먹을 것 늘 풍성하게 하시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살게 하소서."
주변에서 미소를 띄기도 하지만 우리를 주시한다. 시선이 따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당신들 우리의 행복을 짐작이나 하오? 행복하고 즐거운 점심식사 한.국이와의 첫 식사였다. 두 놈이 먹은 것은 한 숫갈도 되지 않았지만 멋진 점심이었다. 다시 둘둘 외투를 챙겨 입히고는 식당을 나섰다. 계속 눈보라이다. 궂은 날씨이지만 이 역사적인 순간을 그냥 가서야 되겠나?
"다운아! 대한 민국이와 엄마 아빠를 사진에 담아라."
다운이가 잽싸게 "찰깍."
부산행은 계속 힘이 들었다. 비상사태, 준전시 상황, 훈련 아님, 실제 상황임.
엄마.아빠와 한.국이가 맞질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팀웍을 위한 훈련을 하지 않았으니.
추풍령 휴게소에 도착하니 어둑해졌다. 부산의 장모님께서 염려하실 것 같아서 전화를 드렸다.
"준전시이지만 저희들은 잘 가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한 밤이라야 도착할 것 같습니다."
눈발은 대구를 지날 때까지 계속 되었으나 길은 원활했다. 징징거리는 쌍둥이를 번갈아 가며 안는 아내는 한.국이가 선물한 설경으로 그저 만족해한다.
좁은 차 엑셀, 그러나 넉넉하고 풍요로운 마음.
집에 도착하니 시계는 밤 11시 30분을 가리켰다. 감사의 기도를 하고 첫날밤을 맞았다.
달콤한 첫날밤이기를 기대했건만 분위기 파악 못하는 한.국이는 계속 징징거린다.
코도 막혔고 열도 나고 낯도 익지 못해서인가?
너의 체온을 느끼고 싶다.
내 정열을 다 쏟아 붓고 싶다.
너의 핏줄에도 흐르는 사랑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