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월 3일 (토) 40대 초반에 손자 보는 기분
글을 읽으면서 생각을 좀더 이론적으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에 『목회와 신학』
7년치 총목차를 뒤적였다. 실망이다. 그 많은 글들 가운데 입양에 관한 글이 하나
뿐이다. 114를 통해서 번호를 알아 기고자 목사님께 전화를 드렸다. 그런데 자리를
옮겼단다. 다시 물어서 집으로 전화를 했는데 이번에는 부재 중. 내일 다시 전화하기로
했다.
주말 오후다. 온 가족이 아기 용품 구입을 위해서 대형 할인점을 향했다. 가는 차안에서 아내에게
"쌍둥이 데려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힘들 것 같은데 우선 한 명만 데려오고 내년쯤에 다시 한 명 더 데려 오면 어떨까요?"
그랬더니 아내는
"저는 쌍둥이를 데려 오고 싶어요. 남이 힘들다고 하지 않는 쌍둥이를 키우고 싶어요. 최선을 다해서 키우면 안될까요?"
넓은 매장에 들어서니 들뜬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진열대 앞의 아름.다운이는 엄마 아빠 보다 더 신나는 듯 했다. 저희들이 물건을 다 고른다. 턱받이는 이것이 좋고, 외투는 처음 입히는 것이니 이것, 내의는 이것이 보송보송해서 좋고 외출복으로는 이 쉐타가 좋고 젖병은 이런 무늬가 좋고,
"어머니, 우유병은 몇 개나 사면 되나요?"
저희들이 더 바쁘다.
결국 나는 별로 고를 틈도 없이 돈만 지불했다.
손자 보는 기분이었다. 시집간 딸이 첫아기 낳기 전에 친정 아버지와 함께 시장 볼 때의 심정. 아마도 손자 볼 때의 기쁨이 이런 것 아닐지?
덕분에 40대 초반에 손자 보는 기분 맛 봤다.
모든 물건을 구입한 후 오는 길에 외식을 하기로 하였다. 언제 아니 몇 년 후에 다시 이런 자유와 여유가 있을까? 특히 아내에게는 자유로운 주말이 5, 6년쯤 뒤에야 찾아오지 않을까?
오늘은 맘껏 베풀리라고 생각하고 간 곳이 괴정 삼거리의 밀면집이었다. 밀면과 설렁탕을 시켜두고 가장으로서 일장 연설을 했다.
"다음 주말부터 당분간은 한.국이 덕분에 이런 주말의 여유와 즐거움을 누리지 못할 것 같다. 그것은 이미 우리들이 각오한 바이다. 그리고 홀가분한 외식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오늘은 먹고 싶은 양만큼 마음껏 먹자. 사리도 시키고 깍두기도 더 주문해서 마음껏 먹도록 해라. 아름.다운이는 간장, 식초도 양껏 먹어."
"아빠는 고춧가루 많이 드세요"
"우하하하"
한바탕 웃고는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아내에게 다시 장난을 걸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당신 정말 한.국이 데려 올거요? 고생이 클 텐데요"
"여보, 한.국이가 우리를 필요로 하고 있잖아요. 힘들겠지만 데리고 와서
키워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