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2월 17일 (수) 아빠는 좋겠네, 등밀이 생겨서
쌍둥이가 온다면 집안 구조를 바꾸어야 하는데 서서히 시작해 볼까?
아침 일찍 아내와 방 구조에 대해서 의논을 하고 가벼운 것부터 옮기기 시작했다. 아직 결단한 것도 아닌데 왜 행동이 먼저 나서는지 모르겠다. 그것 참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런데 아름.다운이가 좋아한다. 쌍둥이 동생이 생긴다고 마음이 들떠 하는 것 같다.
집안 정리하는 아빠를 놀렸다.
"아빠는 좋겠네 등밀이 생겨서. 목욕 갈 때 심심치 않겠네"
늘 다정하게 지내다가도 목욕탕에 갈 때면 혼자 들어가야 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며 가족 성비(性比) 1대 3의 외로움을 눈치 챘었나 보다. 그러나 마음이 확정되지 않는다.
고아와 관계된 성구를 색인하여 묵상했다.
(신명기 24:19-21)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취하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 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 두며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 두라
(시편 68:5)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야고보서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누가복음 10:25-37의 선한 사마리아의 비유.
(신명기 10:18, 14:29, 16:11, 26:12, 시편 82:3, 46:9 등)
입양은 정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 듯 하다.
그러나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는 아름.다운이와 현재의 생활 속에서 약간의 여유와 만족을 누리는 아내가 감당해야 할 희생. 돌박이를 데려와서 키워야하니 10년은 족히 뒷걸음칠 생활리듬과 양육으로 인하여 속박될지도 모르는 일상생활들 ......
결단이 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깨달음을 주시옵소서."
신앙의 사람들과 상담을 해보기로 했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한 마음을 확인해 보기로 한 것이다.
학교에서 가까이 지내는 황, 강, 박 교수님께 입양에 대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좋은 생각이라고 격려해 주신다. 당신들은 마음은 있었는데 실행하지 못한 일이라면서 좋은 일이니 하라고 하셨다.
아직 결정되지도 않은 입양이지만 저녁에도 집안 정리를 하느라고 바빴다.
‘오늘이 쌍둥이 돌이라는데 입양원에서는 돌잔치를 어떻게 할까?’ 부모없는 쌍둥이에게 대한 동정의 마음이 나도 모르게 솟아 넘친다.
저녁에 형님, 누님, 동생 등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의논을 했다. 반대 의견이 컸다. 전혀 예상 밖이었다. 착하게 사시는 형제분들인데 이렇게 반대가 심할 줄이야. 확실히 입양은 간단한 문제가 아닌가 보다.
아내는 친정 식구들에게 계속 전화로 입양의 뜻을 밝히며 조언을 들었다.